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자, 바로 여기에 겸손하고 과묵하고 지칠 줄 모르며, 언제나 주의 깊고 침착하며,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시대의 표징에 민감하여 사람들의 내면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곧 현대에 상응하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사도직 수단을 교회 안으로 들여왔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알베리오네 신부님이 긴 생애 동안 충실과 지치지 않는 항구함과 인내로써 얻으신 많은 결실에 대해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생각하며 참으로 기뻐합니다.”
(교황 바오로 6세, 1969년 6월 28일)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1884년 4월 4일 이탈리아 피에몬테(Pismonte) 주 쿠네오(Cuneo) 지방의 산 로렌조(San Lorenzo)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장래에 사제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힐 만큼 신심이 깊었는데, 그는 이러한 믿음 덕분에 당시의 관례를 깨고 여덟 살에 첫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넉넉지 못한 농촌 생활에서 자녀를 신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용단을 내려 야고보를 브라(Bra) 소신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불건전한 독서의 영향으로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별로 나쁘다는 생각 없이 친구들에게서 빌린 책을 책상 밑에서 읽은 것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악의 열매가 어떤 책을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성모님께서 나를 구해 주셨다”
- G.알베리오네 신부



1907년에 사제로 서품된 알베리오네 신부는 나르졸레(Narzole)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하다가 주교의 신임을 얻어 곧바로 알바 신학교에서 영적 지도를 담당하였고, 교회사, 전례학, 종교 예술사를 강의하였습니다. 1913년 9월 8일에는 교구 주간 신문을 맡으면서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1914년 7월 13일에는 양서 출판과 보급을 전담하게 될 기술자와 보급자들을 양성할 인쇄 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같은 해 8월 20일 '작은 노동자'(Piccolo Operaio)라는 인쇄 학교를 개원함으로서 성바오로수도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은 우리 것입니다." 철저히 세상 한가운데 발을 딛고 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시대적 요청을 알아듣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현대 기술문명이 제공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가장 신속 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을 성덕과 예수 그리스도께 이끌기 위해 출판뿐 아니라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레코드 등 모든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활용 하였습니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주어지는 새로운 매체를 복음 전파에 활용하지 않을 때 그것은 세상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하느님이 허락한 시간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촛불을 한꺼번에 켜지 않으십니다. 필요한 때에 하나 씩, 둘 씩 켜는데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다가 하느님 앞으로 달려 나가 자신에게 불이 밝혀지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성은 사도 바오로의 영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섬기며 살고 전하는 것이 알베리오네 영성의 핵심을 이룹니다.

바오로 가족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그리스도를 살고 세상에 전한다"는 하나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바오로 가족으로는 성바오로수도회(1914)와 성바오로딸 수도회(1915)를 비롯하여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1924), 선한목자예수수녀회 (1938), 사도의모후수녀회(1957)와 4개의 재속수도회로서 대천사가브리엘회 (1958), 성마리아영보회(1958), 예수사제회(1959), 성가정회(1960)가 있으며, 이들을 후원하는 협력자회(1917)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사도의모후수녀회' 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에 진출해 있습니다.

바오로 가족 바로가기
프린트 페이지 맨 위로